사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정확히 그렇게 말했었다. 오늘 할로윈인데 사탕은? 사탕은? 하는 저에게 지저귀는 소리는 상당히 귀여운데 내용이 불순하다. 라며.
할로윈에 사탕 얘기하는게 어디가 불순하다는 건지 동우의 작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놀리고 싶은 마음
"그게 그렇게 억울했어?"
"아니이..형, 그렇잖아여..뭐 거창하게 하자는 것두 아니고 그냥 기분 내자는건데. 사탕 좀 주면 어때서."
"애냐. 니 나이가 곧..아휴, 언제 이렇게 나이 먹었어. 징그럽게."
우리 동우는 마냥 애기일줄 알았는데 다 커버렸어.
"그 집 동우는 컸나보네."
이쪽은 아직 클라면 멀었는데.
"뭐야 이호원. 언제 왔냐."
"형이 얘 후드에 초콜렛 집어 넣을 때부터."
"엑! 뭐야..어쩐지 무겁다 했어. 이거 녹으면 어쩌라구..!"
"안 녹아."
돌이거든.
성규의 얄쌍한 입매가 휘어졌다. 형아 진짜 너무 한거 아니에요. 전에 없이 툴툴 거리는 동우의 입술을 톡톡 때리자 가만히 말리는 손은 또 이호원의 손이라서 조금씩 심기가 사나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돌이라도 포장하는 성의를 보였는데 넌 뭐 가져 왔냐."
"가져왔지."
"빈 손인데."
"잘생긴 얼굴."
아휴. 병신, 귀 빨개질거면 그런 농담 하지 말아라. 없어보이게.
"재미없다. 형도 호야도 둘다 재미없어. 낭만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냉혈한들."
"머리에 바구니 뒤집어 쓴 너는 참 따뜻한 사람이라 좋겠다."
동우의 머리에서 호박 모양이 우스꽝스레 그려진 플라스틱 통을 벗겨 탁자에 탁, 내려놓자 잔뜩 억울한 눈이 쫓아 온다. 어느새 동우의 후드에서 곱게 포장된 돌을 다 끄집어낸 호원은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리모콘 가져오기도 귀찮다고 티비도 안켜는 양반이 이런 쓸데없는 짓은 참 정성스럽게도 해.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동우는 이 구역은 정말 재미 없어졌는지 떠날 모양새로 남군, 어디야. 그새를 못참고 전화질을 하는 것에 잽싸게 호원이 핸드폰을 빼앗고 그대로 성규에게 토스. 종료를 누르는 손가락은 하얗고 섹시하다.
"사탕도 안주고, 호박도 못 쓰고.. 우현이도 못 만나면 나 뭐하라고!"
"잘 들어봐, 형.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그래도 호원이 간만에 형소리를 해주는 것에 기분이 좋은지 성규 손에 들린 핸드폰은 잊은 눈치다. 그러니까 동우형. 형이 그 말같지도 않은 호박바구니를 들고 사탕 구걸을 다닌다 쳐.
"구걸이라니!!"
그러니까, 아무튼. 근데 누가 형한테 사탕을 준대. 그럼 형은 따라가겠지?
"사탕 준다며."
그래, 형은 그런 사람이니까. 따라가겠지. 호원은 한숨을 쉬었다.
"근데..그 사람 집에 갔는데 어두컴컴한거야. 그리고 그 사람이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주방으로 들어가는데...이상한 소리가 들려."
"이...이상한 소리..?"
"응.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비명 소리 같기도 하고. 그럼 형은 조금 도망가고 싶어지겠지만 도망 갈수가 없어."
"왜..?"
"왜냐면..."
왁!!!!!
"악!!!!!"
놀라 주저 앉은 동우를 보며 성규와 호원은 간만에 신명나게 웃어댔다. 역시 재밌어.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는데 주저 앉은 동우가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않는 것에 좀 많이 놀랐나. 싶어 호원이 조심스레 앞에 쭈그려 앉자 눈물 가득 고인 원망 섞인 눈이 정면으로 닿아오고 이건 좀이 아니라 아주 많이, 크리티컬 포인트.
"야 이호원. 너 왜 애를 울려."
"형이 놀래켜서 울지, 내가 울렸어?"
"니가 무서운 얘기 했잖아."
"아니? 내 얘기 무서운 얘기 아닌데?"
"도망 갈 수가 없는데 그게 안무섭다고?"
"도망갈수가 없는건 사탕은 너무 많이 받아서 무거워서 그런거야. 이 얘기의 결말은 엄청난 휴머니즘이 있는 거였다고, 이 냉혈한아."
"병신아, 귀를. 좀 컨트롤을 하든가 끝까지 뻔뻔하게 말을 하든가."
둘 다 똑같거든.
쓱쓱 눈물을 닦아낸 동우가 잔뜩 미운눈을 하고는 동방을 나갔다.
…망했다. 성규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채 잽싸게도 나가는 동우의 뒷모습에 어쩐지 호원은 등에 맨 가방이 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아휴, 씨발. 그 새 돌 넣었네"
*
*
탁, 탁.
동우는 한껏 거슬리는 소리에 음악을 듣다 말고 일어섰다.
할로윈 재미 하나도 없어. 남들은 재밌는데 나만 재미 없어, 나만. 침대 위에서 발을 쿵쿵 구르던 찰나였다. 그리고 또 들리는 탁, 탁. 소리. 괜히 오후에 호원이 들려줬던 이야기가 생각나며 소름도 조금 돋는데 자세히 들으니 누가 창에 돌을 던지는 것도 같고.
어떤 놈이야, 이 밤중에.
호기롭게 이불을 둘추고 일어난 주제에 살금살금. 몇발자국 걷지 않아도 금세 창문이다. 그리고 이젠 탁, 탁, 탁.
뭐야 이거. 하고 자세히 보니 창문 아래에 저 익숙한 모자는 아무래도 이호원의 것 같고. 그대로 문을 열자 마자 날아드는 물체에 이마를 맞고 아! 하자 마자 주섬주섬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던 호원이 놀라 올려다 보는게 보인다.
"너 뭐해?"
"비켜."
"응?"
"비키라고, 맞으니까."
그리고 또 집어 던지기. 쟤 진짜 왜 저러는거야 오늘. 하고 옆으로 비켜서자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는 것들. 뭔가 싶어 불을 켜고 보자 예쁘게 포장된 사탕들이 줄줄줄 창을 타고 넘어온다.
"애도, 아니고, 이까짓게, 뭐가, 좋다고."
하나씩 2층 높이로 던지는게 숨이 찬지 말하는 숨은 스타카토.
씹어 먹을 수도 없고, 저걸.
누구? 나? 하며 손가락을 들어 저를 가리키자 비키라고. 하며 다시 사탕 세례. 얼핏 보이는 불빛에 성규가 매번 놀리는 빨개진 귀끝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누가 누굴 보고 애라는 거야. 조금은 기가 차고 어쩐지 조금은 설레버린 마음에 호원의 가방이 텅 빌 때까지 창 안쪽에서 그 하는 냥을 멍하니 지켜본다.
"레몬 맛은 없어. 그거 성종이 새끼가 다 털어 갔다더라."
"할로윈 같은 소리 한다며."
"동우형. 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뭐가?"
또 너라고 하고. 말 똑바로 안하지.
무섭게 말해봤자 들은척 만척이다. 그리고 밤이고, 비루한 세입자라는걸 망각한 자의 최후는 늘 그렇듯. 조용히 좀 하라는 나지막하지만 강력한 경고의 말.
죄송합미다, 또 크게 말하고 입을 합. 내려가서 담판을 지어야겠다 싶어 우다다 내려가는 소리도 작을리 없었다.
"야, 이호원."
"잘 들어. 난 할로윈 같은거 기념일이라고 너한테 사탕 던진거 아니야."
"미안해서 그러지, 너?"
"아직 아닌데."
진심으로 호원은 지금 당장 미안해서 그러는건 아니었다. 장난 좀 한게 뭐 대수라고. 그런걸로 미안했으면 성종에겐 사흘 밤 낮 석고대죄를 했어야했다.
정말 미안한건 어쩌면 지금 부터.
"아직 아니라는게 무스..."
촉.
하고 닿는건 아마도. 아마도가 아니라 확실히.
"좋아해서."
정말 미안한건 이거라고.
다시 촉.
이번엔 조금 더 길게.
"말 안하려고 했는데 너랑 나 사이에 챙길 기념일이 호박이나 뒤집어 쓰는 할로윈이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나쁘잖아. 그건 아무랑이나 다 하는거고 난 너랑, 아무나랑 하는 아무나 되기 싫은데.
그러면서 쳐다본 동우의 얼굴은 고백을 받는 주제에 자기가 고백이라도 한냥 곧 있으면 펑하니 터질 정도로 발갛게 달아오른 멍청한 얼굴이다.
그래, 알고 있다.
‥저 얼굴에 약해. 멍하니 있을 때 날카롭던 눈매가 웃으며 접혀지는 순간의 유순함. 따뜻한 눈동자와 정체를 알 수 없을 귀여움. 그 모든게 담긴.
자신도 모르게 또 입술이 다가간다. 이번엔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동우의 발걸음에 닿진 못했지만.
"내가...좋다구..?"
"응."
시작이 어렵지 한 번 꺼내 놓으니 그 다음은 별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피하지마."
이번엔 물러서지 못하게 두 손을 들어 턱을 그러쥔다. 놔달라고 하면 놔주고.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하는 말에 담긴 호흡이 조금 거칠고 불안정했다.
생각해보면 호원에겐 신나게 놀림 당한 기억밖에 없다. 아주 어린 시절 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절교하겠다고 제 딴에는 화를 낸적도 있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렇게 놀림을 당하면서도 나는 왜 이호원 옆에 있었더라.
동네 형에게 잘못 걸려 얻어 터진 날도 호원은 터진 잡채 같다며 저를 놀렸었다. 그런 주제에 다음날 자기보다 더 큰 상처를 달고 왔고 그 형은 자기보다 어린애한테 두드려 맞은게 소문이나 쪽팔려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한다고 했다.
좋아하던 누나에게 차이던 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겠다며 놀이터에 쭈그려 앉아 있을 때도 가지가지 한다며 며칠간 소주 잔을 채워줬고 호원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에선 자꾸만 주류의 갯수가 맞지 않아 의심하던 찰나 고3이던 아들이 새벽마다 한병씩 들고 나르는 걸 본 후로 집 냉장고에까지 자물쇠를 채웠다는 얘기는 안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반대야.
…이호원은 왜 내 옆에 있었더라.
마주 닿는 시선이 따갑고 뜨거워 눈을 돌리자 집요하게 쫓아온다.
"피할거야?"
이미 곳곳에 닿아있는 주제에. 피할 곳도 없게 만들어 놓고, 반칙이다.
더는 호원의 까만 눈동자를 볼 자신이 없어 차라리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대로 닿는 입술. 바깥의 온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뜨거운 혀.
턱을 그러쥔 손이 내려와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몸을 감싸 안는다.
아. 완전 말렸어.
에필로그.
후끈후끈 달아오른 얼굴을 겨우 진정 시키고 방에 들어와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흩어진 형형색색의 사탕을 보며 입꼬리가 넘실넘실. 하나만 먹고 자야지, 하며 사탕 봉지를 까고 발갛게 부어오른 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사탕 주제에 창문 깨부실거 같더라.
"야 이호원!"
있는 힘을 다해 던진 돌사탕이 맞았다.
누구에게?
모르는 사람에게.
아마도 교복을 입은 걸로 봐서는 학생. 학생이 이 시간에 왜 돌아 다니는거야... 다시 우다다 뛰어 내려가 고개 숙여 사죄하자 괜찮다고는 하지만 전혀 안 괜찮은 목소리.
"얼굴 안 맞아서 괜찮아요."
"응..네?"
"돌도 제 얼굴은 피해 가네요."
"...예?"
무서워. 호원이 얘기에 나오는 사탕 주는 집주인보다 얘가 여섯배는 더 무서워.
"농담이에요."
웃을줄 알았는데 안 웃네. 웃는거 귀엽던데.
"얼굴에 맞았음 웃었으려나."
달랑달랑 교복에 아스라히 달려있는 명찰. 김..
미처 읽기도 전에 해피 할로윈. 하며 손에 잔뜩 들려주는 진짜 사탕에 정신이 팔린새 그래도 얼굴은 안돼요, 이걸로 먹고 살건데. 하며 돌아서는 바람에 결국 이름은 못봤더랬다.
‥음. 7년 전이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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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시리즈가 된 슬픈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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